098. 밥

나는 냄비 밥을 좋아하는데 요즘은 압력솥을 쓴다. 전기 기능이 없이 그냥 뚜껑에 압력기능이 있는 솥을 쓴다. 전기밥통으로 만든 밥보다 불 피워 물 끓여 만든 밥이 좋다. 전기로 하는 것이나 가스불로 하는 것이나 큰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자주 해먹는 게 아니라서 괜한 의미부여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미리 해 놓은 밥 보다 갓 지은 밥이 좋다. 햇반 보다 직접 만든 밥이 좋다. 얼려 두었다가 전자렌지로 데워 먹는 밥 보다 오늘 만든 밥이 좋다. 그리고 공깃밥 보다 막 퍼서 담아 주는 밥이 좋다. 스텐 밥공기 보다 도자기로 된 밥그릇을 좋아하고, 예쁜 밥그릇에 밥이 담겨 있는 것이 먹음직스럽다.

이십대 초반이었나 주유소에서 알바로 숙식 주유원을 했다. 말은 알바지만 숙식까지 해결하는 직원이다. 알바라는 이름에 걸맞은 최소한의 월급으로 부릴 수 있는 어린 직원. 주유소 옆에는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끼를 해결하는 장부 식당이 있었다. 주로 주유소 근처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와서 식사를 하는 곳이라 매일 보는 사람이 많다. 맛있어서 찾아오는 단골이 아니다. 그저 저렴한 가격에 외상 장부 거래가 되기 때문에 일반 손님 보다는 단체 식사를 주로 하는 식당이다.

밥맛에 민감한 나는 그 식당이 맘에 들지 않았다. 밥그릇을 테이블에 던지듯 서빙 하는 식당 사장이 싫었고, 주유원들을 무시하는 태도가 꼴 보기 싫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식당 밥에서 쉰내가 났다. 아무리 싸구려 직원이라도 이런 대접을 받으며 이런 쓰레기 같은 밥을 먹고 살아야 하나 식사 때마다 한숨이 나왔다. 늘 배가 고픈 나이였다. 간식거리도 없이, 취미를 즐길만한 시간도 없이 일만 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밥시간은 중요한 휴식시간이었고 식사는 하루를 움직이는 활력이 되어야 했다. 그런데 밥맛이 거지 같으니.

어느 날 주유원의 밥통과 소장이 먹으러 왔을 때의 밥통이 다르다는 것을 보았다. 가뜩이나 밥맛도 없는데 차별까지 하다니. 그래서 따졌다. 밥으로 차별하지 말라. 돈 몇 푼 아끼려고 사람에게 못 먹일 밥을 주는가. 이게 사람 먹을 밥인지 어디 한번 먹어 보라. 싸게 먹어도 손님이다. 밥 동냥하는 사람 아니다. 천 원짜리 사람이 있고 2천 원짜리 사람이 따로 있나.

식당 사장은 음식에 자부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지금까지 내 음식 가지고 뭐라 하는 사람 없었다. 내 음식이 어때서. 니가 뭘 안다고 함부로 입을 놀리나. 밥에 아무 냄새도 안 난다. 너거들 밥값 얼마 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내가 손해다. 차라리 오지 마라. 어린놈이 말을 함부로 한다. 예의 없는 것들한테는 음식 안 준다.

뭐 그런 이야기.

식당 사장이 말하는 중에 문을 쾅 걷어차고 나왔다. 창문이 깨질 정도로 찼는데 깨지지 않았다. 힘이 부족했나. 불같이 화를 내며 욕하는 사장을 같이 일하는 주유원 형이 말렸다. 사장이 욕하는 소리를 들으며 주유소로 돌아왔다. 안 먹고 말지. 소장에게 식당 상황을 말했지만 근처에 마땅한 식당도 없고 그 정도로 저렴한 식당도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먹을 만하던데 왜 그래. 주유원의 불만은 무시되었다.

저녁 시간에 배가 고프니 또 그 식당에 간다. 사장은 불쾌한 말을 하며 식사를 내놓는다. 테이블에 반찬을 탕탕 내려놓고 밥을 푸짐하게 퍼 준다. 하나도 안 이상하구만 니 코가 문제다. 화를 내면서도 밥을 푼다. 그렇지만 쉰내 나는 밥이다. 한술 뜨다 말고 냄새 때문에 테이블에 밥그릇을 엎었다. 반찬은 그대로 두고 밥그릇만 뒤집어 놓았다. 상을 뒤엎은 게 아니다.

나는 대체로 얌전했고 누구에게나 인사를 잘 하는 직원이었지만, 우리를 무시하는 식당 사장에는 인사가 나오지 않았다. 어른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이 C 냄새 나서 못 먹겠네. 사람을 개돼지로 아나. 이게 사람 묵을 밥이가. 니나 무라. 문을 활짝 열어둔채 식당을 나왔다. 식당 사장이 뒤에서 욕을 하고 나도 돌아서서 욕했다. 따라 나온 주유원 형이 말리는 덕분에 몸싸움이 되지는 않았다. 그냥 서로 욕하고 삿대질하고 시끌시끌했다.

다음 날 사장이 찾아와 사과하라 소란을 피웠다. 소장은 사장에게 보고했다. 사장 할머니가 뭐가 그리 불만이냐고 물었다. 주유원을 무시하고 식탁에 밥을 던져준다. 사람들과 다른 밥을 준다. 그래서 기분이 나빴다. 우리 밥은 쉰내가 나고 못 먹을 밥이다. 사람이 밥은 제대로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사장이 알았으니 가보라고 했다. 식당은 사장 할머니 건물에 있다.

식당 사장과 주유소 사장 할머니가 돌아가고, 소장이 우리를 불렀다. 식당은 바꾸지 않는다. 어린놈은 가서 사과하라. 어른에게 말버릇이 고약했다. 밥통은 새것으로 바꾼다. 문 열고 닫을 때 공손하게 하라.

그 해 겨울이 날 때 까지 주유소 일을 했고, 따뜻한 밥을 잘 먹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원고지 12.3장)

097. 자격에 관한 의심

처음 서울에 왔을 때 나는 자신이 없었다. 내가 가진 것에 대해서, 내가 가진 자격에 대해서 내세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고 아직 인증 받지 못한 상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서 누군가가 나의 상태를 파악하고 나를 등급 매겨서 어느 정도의 일을 시킬 수 있다고 성적표를 발행해주기를 기대했다.

편견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증세는 지방출신들에게 공통적으로 느껴졌다. 같은 문제가 주어졌을 때, 서울 사람들은 실력도 없고 아직 그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일단 할 수 있다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단 대답하고 일을 따낸 다음에 공부하고 그걸 또 해낸다. 품질과 상관없이 일단 해 낸다. 지방 출신들은 이미 실력이 있다고 생각하고 일을 맡겨도 “아이구 제가 그걸 어떻게…” 하면서 발을 뺐다. 잘 하면서도 자기가 한 것에 대해선 볼품없는 결과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에게 음반 속지를 써 보라는 제안이 있었다. 나는 음반의 속지를 보며 음악을 듣고 공부했기 때문에 그 일이 엄청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은 감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도저히 들지 않았다. 그런 일은 대단한 음악 평론가나 팝 칼럼니스트가 쓰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아이구 제가 그걸 어떻게…”라며 일을 고사했다. 그리고 일을 해내진 못했어도 나에게 그런 일이 들어왔다는 자체에 감격했다. 서울에 오니 나에게도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몇 년 더 열심히 하면 음반 속지를 쓰는 전문가가 되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몇 년 뒤에 내가 좋아하는 음반의 속지를 쓴 사람을 만났는데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시시했다. 이런 사람들이 속지를 썼구나, 모두 전문가가 쓰는 것은 아니었구나, 그다지 아는 것도 많지 않은데 어떻게 쓸 수 있지? 라고 뭔가 속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일은 내가 할 만하다 생각한 사람이 주었으니 내가 해도 괜찮은 일이었고, 내가 쓴 글이 문제가 될 정도로 못했으면 다른 사람에게 일이 갔을 거고, 내가 쓴 글이 썩 나쁘지 않으면 그대로 나갔을 것이다. 음반 속지를 가지고 이 사람이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있냐고 따지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그 속지를 쓴 사람이 누구인지 알리지 않는 경우도 많다. 세계문학전집의 각 책들을 펼쳐보아도 번역을 누가 했는지 그 사람이 어떤 자격을 갖추었는지 상세한 설명이 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

나의 자격에 대한 자격지심, 나 보다 좋은 스펙의 사람들과 비교해서 나를 나락으로 빠뜨려 스스로 주눅 들게 만들었다. “아니야, 너는 할 수 있어, 네가 적격자야, 그 정도면 충분해” 이런 말을 듣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누군가 “얘가 이걸 왜 해?”라고 말할 때 그 사람이 나타나 도와주기를 기대하는 거.

자신감 혹은 자격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가장 가혹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면 사람들은 저 사람이 전문가인가 보다 하고 보게 되지 왜 저 사람이 저기서 일을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아침에 세수를 하고 나왔는지, 어제 신던 양말을 또 신고 왔는지, 전세를 살고 있는지 월세를 살고 있는지, 유학을 갔다 왔는지 지방대를 나왔는지 그런 것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다. 쳐다본다고 해서 알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글쓰기를 위해 장비를 사거나 장소를 섭외하거나 트레이닝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니 꽤 검소한 활동인 것 같은데, 비싼 취미를 하는 것처럼 대놓고 자랑하지 않는다. 비싼 취미를 하는 사람들은 돈 많이 드는 것을 부끄러워하는데 글쓰기는 무엇을 부끄러워하나. 아직도 나의 자격 문제를 생각하는 내가 문제다.

(원고지 9.6장)

096. 습관은 망가지기 쉽다.

오래전, 운전하는 친구가 언덕길을 타력으로 올라간다는 말을 했다. 달려오는 힘으로 자연스럽게 슥 언덕을 올라가는 것이 좋다고. 탄력은 들어 봤지만 타력은 뭔가라고 생각했다. 때리는 힘이 타력 아닌가? 운전을 하지 못하던 시기였으니까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자전거 탔을 때처럼 달려오던 힘으로 언덕길을 쉽게 오르는 것을 상상했다. 엔진으로 달리는 자동차에도 그런 것이 필요한가?

사전을 찾아보니, 탄력은 힘의 진행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고 타력은 힘의 진행 방향으로 진행하는 힘이었다. 탄력은 고무 공을 벽에 던졌을 때 튕겨 나오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고 타력은 주마가필 처럼 달리는 방향에 힘을 보태주는 에너지였다. 볼살을 눌렀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을 보고 젊구나 빨리 회복되지 않는 것을 보고 이제 늙었구나 할 때 사용하는 것이 탄력이고, 달리기의 도움닫기나 3단 뛰기처럼 달려오는 힘을 이용해 다음 동작에 힘을 보태는 것이 타력이다.

탄력을 얻기 위해서는 단단하지 않으면서 유연해야 한다. 단단하면 깨진다. 내가 깨지든 남이 깨지든 어느 한 쪽이 다치게 된다. 단단하지 않다고 해서 무르기만 해서도 안 된다. 물러서 반응을 하지 않는 정도로 시큰둥하면 탄력이 생기지 않는다. 단단한 것처럼 탱탱하게 유연해야 탄력이 생긴다. 바람 빠진 공보다 바람이 꽉 찬 공이 잘 튕겨 나온다.

탄력은 긴 시간 쌓아서 만드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고유의 성질 혹은 타고난 특징 같다. 시간이 갈수록 더 무뎌지고 단단해져서 탄력이 없어지는 것이 자연스런 현상인 것 같다. 탄력의 특성이 진짜 그런 것인지 아닌지 확실하게 알 수 없다. 그저 그런 것 같다고 짐작할 뿐이다.

타력을 얻기 위해선 꾸준하게 힘을 모아야 하고 공을 들여야 한다. 적금을 붓듯 차근차근 모으고 쌓아야 결실을 볼 수 있고 결실에 이르는 동안 실수가 없어야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 타력은 좋은 습관을 들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비슷하다. 글쓰기가 타력을 받아 적은 힘으로도 앞으로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원고지 5.38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