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티 블루

내가 카페 미스티 블루에 도착한 것은 날짜가 막 바뀐 시간이었다.

미스티 블루의 사장과 직원들, 손님들이 보는 가운데 음향 장비를 손보기 시작했다. 밤 늦은 시간, 눈치 없는 손님들은 음악을 신청하거나 음악이 고리타분 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지금은 음향 시스템 점검 중 입니다”

새로 개업한 이 카페에는 라이브 무대가 있다. 음향 시스템은 BGM을 위한 음향 시스템과 라이브 무대용 시스템으로 구분되어있다. 나는 리버브 장치라는, 밤무대 가수의 목소리를 제대로 흔들어 준다는 그 장치를 제대로 동작하게 하기 위해 출동(?)한 셈이다. 전문가는 전문가만의 도구가 있기 마련이다. 누가 보아도 폼나는 헤드폰을 하드 케이스에서 꺼낸다. 이때, 알만한 사람들은 알 수 있도록 나는 액션이 커진다.

길다란 유리잔에 파인애플 쥬스가 왔다. 얼음 한 두 조각과 함께 빨대도 꽂혀있다. 일하는 사람을 위해 가져온 것인지, 손님에게 주려다 그대로 가져온 것인지 나의 업무 형태와 상관없이 평소 하던대로 가져온 것 같다. 일에는 방해되는 형태라 거추장 스러웠지만 마침 더웠던 터라 시원하게 마셨다.

음향 콘솔의 신호 흐름을 파악하고, 음향 장비 랙(Rack)을 열고 케이블을 점검한다. 마이크에서 시스템으로의 입력 확인, 채널에서 AUX 출력으로 전송 확인, AUX 출력단의 신호 확인. 리버브 머신에게 보낼 신호까지는 모두 확인되었다. 아무런 이상이 없다. 케이블도 장치에 잘 연결되어 있다. 리버브 머신의 세팅이 잘못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이것은 뒷면부의 셋업이라 초기 셋업이 잘 못 되어 있으면 엔지니어가 보기 전까지 발견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장비를 판매하고 셋업한 분들이 실수 하신 것 같다.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고 이제는 전면부 점검. 전면부는 소프트웨어 셋업이라 파라메터가 많은 편이다. 아니다 다를까 하드웨어 셋업과 다른 소프트웨어 셋업이 되어 있다. 이것을 수정하고 나니 누가 들어도 알 만큼 소리가 달라졌다.

사운드 체크를 위해 무대에 오른 가수는 벌써부터 노래를 하고 있다. 테스트를 위해 소리를 크게 했다 작게 했다 하고 있으니 노래를 하기가 무척 불편할텐데도 불구하고 차분하게 노래를 부른다. 스피커 셋업을 마치고 무대음향을 담당할 분에게 사용법을 알려드렸다.

다음은 BGM용 시스템 셋업. 이번에는 앰프가 낡아 눈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세팅을 해야 했다. 음향 시스템을 셋업하면서 눈에 보이는대로 하기가 쉽다. 예를들면 이런 것이다. 왼쪽과 오른쪽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의 밸런스를 맞추는데 있어서 앰프의 볼륨이나 밸런스 노브(Knob)로 눈에 보이는 밸런스 세팅을 한다. 즉, 눈으로 보기에 가운데 있어야 소리도 양쪽이 동등하게 소리가 난다고 믿는 것이다. 음향 장비의 셋업은 귀로 소리를 비교해가며 맞추는 것이 옳다. 음향시스템에 문제가 없다면 대체로 눈으로 판단하는 방식의 세팅이 완전히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눈으로 보는 것과 소리가 비슷하게 나는 것이 잘 만들어진 음향 장비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미스티 블루의 앰프는 오래된 것인지 클래식해서 그런지(결국 같은 말이지만) 눈으로 보는 세팅과 귀로 듣는 평가가 다를 정도로 낡은 것이었다. 그래서 눈으로 납득할 수 없는 세팅을 해야 하고, 이것을 관리자들에게 말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눈으로 하는 세팅으로 돌아가지 않고 귀로 세팅한 소리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미스티 블루에는 스피커 4개가 BGM 용도로 쓰인다. 앰프에는 2개의 출력 채널이 있는데 미스티 블루의 앰프 세팅은 한 채널에 스피커를 2개씩 묶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앰프의 채널에 문제가 있는지 한쪽 채널은 소리가 극단적으로 작았다. 한쪽 채널은 아주 크게, 한쪽 채널은 좀 상대적으로 작게 세팅을 해야 밸런스가 맞다. 카페를 둘러 보면서 소리를 듣고, 다시 밸런스 세팅을 하고 스피커 각도를 조절하고 다시 확인하고.

헤드폰은 아직도 내 목에 걸려있다. 목에 걸쳐진 헤드폰은 음향을 점검하는 엔지니어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일종의 코드다. 더이상 업무에 필요없는 헤드폰을 여전히 걸치고 카페 안을 돌아다닌다. –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 얘기 하자면… 일하다가 헤드폰 내려 놓기가 어렵다. 분실의 우려, 케이블 손상 등등의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폼이 안난다는 것이 제일 큰 이유다~ 음하하!!

몇차례 이 행동을 반복하면서 카페 전체의 음량 밸런스를 비슷하게 맞추었다. 카페를 걸어서 한바퀴를 돌아도 크게 들리는 곳과 작게 들리는 곳의 차이를 없애기 위함이다. 세팅을 다 끝내고 나니 홀가분하다. 손을 씻고 바에 앉았다.

무대에서 노래를 하는 가수는 알고보니 화가였다. 수많은 LP와 CD를 계속 틀어주시던 분은 이 카페의 DJ로 경력이 20년이 넘는 분이라고 한다. 미스티 블루 사장님도 무대에서 노래를 했는데 수준급 실력이다. 이 분들은 어떤 관계로 이 자리에 다 모이게 된 것일까. 나보다 10~15세 연상인 이분들은 모두가 형, 동생하는 사이다. 어른들은 현실적인 물체가 없는 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현금으로 지불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한끼의 푸짐한 저녁식사, 술자리 등 역시 무형의 어떤 것으로 그 대가를 지불하려 하신다. 나는 야밤에 출동해 음향 시스템을 점점하고 셋업한 대가를 바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으로 대신했다.

지금은 시들하지만 전설적 명성을 가졌던 DJ, 수채화를 그리는 바람끼 다분한 멋쟁이 가수, 카페 사장하느라 성질 죽이고 산다는 사장님. 나이가 많건 적건 이들은 소년의 모습, 소년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재미를 추구하고, 재미를 위해 싸운다. 하지만 더 이상 소년이 아닌 이들이 추구하는 재미는 재미를 위함이 아니라 어찌 할 수 없는 상처를 보다듬고 어루만져줄 위장으로서의 재미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세월 만큼의 아픔과 세월 만큼의 상처가 이들을 지쳐 보이게 할 수도 있다. 나는 다만 재미를 추구하고 진지하게 일하는 그들의 모습 덕분에 카페가 기분 좋게 느껴졌다. 아마도 내가 다시 그 카페에 방문 할 일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나의 미래도 그들을 닮아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미스티 블루에서는 자연스레 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