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9. 냉장고에 꽃이 피었다

냉장고에 꽃이 피었다. 음식이 상한 자리, 곰팡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자리에 핀 꽃이다. 꽃 모양을 한 곰팡이 무리를 착각한 것인가. 비닐봉지 찢어진 틈 사이로 비집고 올라온 꽃은 크기가 작긴 해도 제대로 꽃 모양을 갖추고 있었다. 색깔만 아니었다면 사마귀인지 착각할 만큼 길쭉한 꽃잎이 코스모스처럼 생겼다. 상쾌하진 않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마주한 것 때문이지 꽃을 보는데 소름이 돋는다.

꽃이 핀 것은 토마토와 감자가 들어간 스튜였다. 여러 가지 재료가 섞인 음식이라 어떤 특수한 조합에 의해 꽃이 피어날 수도 있었던 걸까. 냉장고 안에는 꽃 이외에도 각종 곰팡이가 여기저기 피었다. 미처 보지 못했던 채소 칸을 열어보니 대파에도 꽃이 피었다. 대파는 잎이 마르고 뿌리가 썩어들어가는데도 민들레처럼 생긴 꽃을 피웠다. 채소 칸에 있지 않았다면 방 안으로 꽃 씨가 날아다닐까 걱정될 정도로 크고 화려한 꽃이다. 곰팡이는 김치, 양파, 감자, 치즈에도 피어 있었다.

혼자 사는 사람의 냉장고에 곰팡이가 피는 것이야 흔하다 할 수 있겠지만 꽃이 피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꽃이긴 꽃이지만 꽃이라고 할 때 흔히 연상할 수 있는 아름다움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어떻게 냉장고에 꽃이 필 수가 있나. 꽃이라니. 곰팡이에서 꽃이 나오기도 하는 건가. 그런 꽃이 원래 있기는 한 건가. 섬뜩한 느낌 때문인지 꽃을 꽃이라 부르는 게 어색했다. 시선이 이동할 곳을 찾지 못한 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작은 한숨이 나왔다. 냉장고에 꽃이라니.

양말이 젖었다. 냉장고에서 흘러나온 물이다. 흘러내린 물은 걸쭉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전기 코드가 빠진 것일까. 그래서 꽃이 핀 건인가. 젖은 양말을 벗고 심호흡을 크게 한다. 감자에서 싹이 솟아오르고 양파의 줄기가 나무처럼 자라 올라오고 당근이 물컹해져 있다. 며칠 지난 등심에서는 구더기가 생겼는지 썩는 냄새가 났다.

냉장고 문을 닫고, 전기를 차단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아니면 더 문제가 커지는 것일까. 구더기가 꽃의 성장을 돕는 것인지, 꽃이 구더기의 성장을 돕는 것인지 예측하기가 두렵다. 불을 질러 태우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이대로 잠가둔 채 이사를 나가야 하나. 증식에 증식을 거듭하다 냉장고 문을 비집고 터져 나올지도 모른다.

경찰이나 소방서에 신고를 하는 것이 나을까, 비웃음을 당하지는 않을까 생각했다. 어쩌면 마약 재배 같은 것으로 문제가 될지도 모르지. 어찌 됐건 이상한 꽃이 피었고 그 꽃이 무슨 꽃인지 모르는 상태에다 번식력이 뛰어난 지금까지의 상태를 볼 때 미친 꽃이 틀림없고 미친 꽃이라면 마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처음 바퀴벌레를 잡던 날처럼, 냄새나는 음식물 쓰레기를 맨손으로 쓸어 담던 날처럼 냉장고에 핀 꽃도 내 손으로 치워야 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더 번창한 꽃밭이 되기 전에.

(원고지 7.48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