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정식 파스타

잠이 오지 않아 야식으로 파스타를 만들었다. 불면이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다. 밤이 늦었지만 배가 고팠다. 배가 고프면 쉽게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게 된다. 잠이 드는 것도 아니고 깨어있는 것도 아닌 상태로 새벽을 맞이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배고픈데도 잠들 수 있다면 파스타를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바질과 계란 노른자가 들어간 파스타. 맥주와 함께라면 뭐든지 맛있지

파스타는 내가 할 수 있는 음식 중에서 쉽게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다. 라면 보다 쉽게, 라면 보다 폼나게, 라면 보다 건강하게. 라면에겐 미안하지만 내게 파스타는 그런 느낌이다. 그리고 초라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 장점이다. 집에 파스타 면이 있다면 나머지 재료는 무엇이든 상관 없다. 없으면 없는 대로 간소하게, 있으면 있는대로 화려하게. 나의 파스타는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가 원칙이다.

물을 끓인다. 소금을 넣는다. 한꼬집 두꼬집 정도의 소금. 좀 많다 싶을 정도의 소금도 괜찮다. 나중에 간을 덜 하면 되니까. 소금물이 끓을 때 면을 넣는다. 영화에서 처럼 파스타 면을 세워 놓으면 촤르륵 옆으로 쓰러지는 모습도 보기 좋다. 냄비가 넗지 않기 때문에 너무 늦지 않게 면을 물 속에 넣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냄비 끝에 걸린 면이 뜨거운 열에 그을려 탈 수 있다. 젓가락이나 집게로 물에 담긴 면을 잡고 흔들어 면 전체를 물에 잠기도록 한다. 물에 녹은 소금을 풀어주는 느낌이어도 좋고 아무 생각이 없어도 좋다. 그저 면을 물에 잠기게 하겠다는 목적으로 이리저리 면을 흔들어 주는 거다. 이 때 냄비의 뚜껑을 닫지 않는다. 뚜껑을 덮어 놓으면 거품이 생겨 물이 넘칠 수 있다. 괜한 에너지 낭비하지 말고 그냥 뚜껑을 열어 놓은 채 다음 단계로 간다.

면을 삶는 동안 재료를 준비한다. 첫번째는 마늘. 마늘을 납짝하게 눌러 으깬다. 칼로 얇게 써는 마늘이 보기는 좋지만 맛을 위해선 으깨는 것이 좋다. 마늘은 당연히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만 없으면 없는대로 또 괜찮다. 우리집 냉장고엔 마늘이 떨어졌다. 찬장 구석에 양파가 있다. 있는 재료는 무조건 사용한다. 양파 껍질을 벗기고 조그맣게 썬다. 반개만 사용한다. 양파는 칼 질 연습하는 기분으로 한다. 꼭지 부분까지 칼집을 내고, 가로로 또 칼집을 내고, 꼭지 반대쪽 부터 차례로 썰어 나가면 밥 알갱이 처럼 혹은 작게 썰은 깍두기 처럼 양파가 조각난다. 만약 양파가 없다면 없는대로 또 괜찮다. 버섯이 있다면 버섯을 사용해도 좋고, 닭가슴살 혹은 소고기 등심 같은 것이 있다면 물론 사용해도 좋지만 일부러 구입하지 않은 이상 집에 보관되어 있을리가 없지. 조개가 있어도 좋고 새우가 있어도 좋다. 없으면 없는대로, 있으면 있는대로. 오늘은 버섯도, 닭가슴살도, 소고기도, 조개나 새우도 없다. 그냥 양파 반쪽만 넣는다.

면이 좀 삶겼는지 확인한다. 휘휘 저었을 때 살짝 저항하는 느낌 정도가 좋다. 완전히 풀려 있는 것 보다 살짝 저항하는 정도. 면발 하나를 건져 맛 보았을 때 살짝 짭쪼름 한 맛이 나면서 살짝 딱딱한 느낌이 살아 있는 것이 나는 좋더라. 완성했을 때 부드러우면서 살짝 꼬득꼬득한 느낌의 면발을 만드려면 지금은 좀 덜 풀어진 느낌이어야 한다. 이 상태를 알-덴테 라고 하던가. 적당히 익은 면을 물에서 빼 내고 올리브 오일을 뿌려 두기도 한다는데, 나는 그냥 채에 건져 놓기만 했다. 아직 면을 삶은 물을 버려선 안 된다. 버린다 하더라도 최소한 반컵 정도는 남겨 두어야 한다. 나중에 면을 볶을 때 사용한다.

물, 소금, 면 만으로도 맛이 난다.

팬에 올리브 오일을 두른다. 마늘이 있다면 마늘과 올리브 오일을 함께 두른다. 오늘은 마늘이 없으니 올리브 오일만 둘렀다. 올리브 오일이 없다면? 식용유 써야지. 그래도 올리브 오일 정도는 있어야 파스타라 할 수 있다. 적어도 올리브 오일은 있는 걸루 한다. 집에 할라피뇨가 있어서 올리브 오일과 함께 넣었다. 마늘도 없는 올리브 오일에 할라피뇨만 덩그러니 들어갔다. 역시 없으면 없는대로, 있으면 있는대로 넣는다. 할라피뇨는 매운 향을 내는데 사용한다. 파스타가 완성된 후에 먹으면 너무 맵다. 입에 넣지는 않을 것이다. 할라피뇨가 없다면 매운 청양 고추를 사용해도 좋고, 없으면 넣지 않는다. 올리브 오일은 넉넉하게 두른다.

가스랜지 불을 붙여 팬의 온도를 올린다. 기름이 뜨거워지면 양파를 넣는다. 마늘이 있었다면 마늘 즙이 기름에 잘 베일 때까지 기다리지만 오늘은 마늘이 없었으니, 올리브 오일이 조금 데워졌을때 양파를 투척한다. 양파 색깔이 좀 변하기 시작할 때 면을 넣는다. 뜨거운 기름에 물이 들어가니 소리가 요란하고 연기가 난다. 하지만 면 때문에 팬의 온도가 떨어져 금방 진정된다.

후추 한 꼬집 정도를 넣고, 바질도 한 꼬집 정도 넣었다. 바질은 대부분 집에 없다. 없으면 안 넣는 거다. 없는데 어떻게 넣겠나. 없으면 안 넣고, 있으면 넣고. 바질 없다고 파스타 안 되는 건 아니다. 후추와 바질이 섞이도록 팬은 흔든다. 요리용 긴 젓가락을 사용하거나 집게를 사용해 저어준다. 저으면서 팬을 흔들면 요리 전문가 느낌이 난다. 남겨 두었던 면수를 붓는다. 면이 잠길 정도로 많이 붓는 것이 아니다. 1/3컵 정도. 면이 젖을 정도면 충분하다. 면수가 줄어들 때까지 팬을 흔들면서 저어준다. 뜨거운 팬에서 면수가 쫄아 면에 더 찰싹 붙는 느낌이다.

이제 완성단계. 이대로 먹어도 좋다. 파마산치즈가 있다면 넉넉하게 뿌려준다. 피자 시켜 먹고 남은 치즈도 좋다. 있으면 넣고 없으면 만다. 치즈가 없다면 계란 노른자도 좋다. 흰자를 넣으면 뭉쳐지니까 노른자만 사용한다. 흰자는 버린다. 아까우면 마시든가. 팬의 불을 끈 상태에서, 팬에 남아 있는 열기를 사용한다. 계란 노른자가 면에 코팅이 되도록 비빈다. 면에 계란 노른자가 골고루 묻을 수 있도록 저어준다. 팬에 직접 닿으면 금방 익어버리니 팬에 닿기 전에 면에 골고루 묻도록 저어준다. 계란 노른자가 면에 코팅이 되고 거기에 후추 가루가 붙어 있으면 까르보나라지. 계란과 후추가 면에 찰싹 붙어 멋진 모양이 된다. 계란이 없으면 안쓴다. 모든 재료가 없어서 면만 끓여 냈더라도 먹을만하다. 마늘, 양파, 할라피뇨, 바질, 후추가 없어도 소금을 풀어 놓은 물에 면을 끓여 내면 그것 만으로도 먹을만하다. 아, 올리브 오일은 있어야지. 소금물에 파스타 면과 올리브 오일, 이렇게 3가지는 있어야 파스타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플레이팅. 귀찮으면 팬에 담긴 채로 먹는 것도 괜찮지. 나는 이왕이면 접시에 예쁘게 담겨 있는 것이 좋더라. 한밤중이고, 잠이 안와서 먹는 야식이라 하더라도, 금방 해먹고 치울 음식이라도 이왕이면 예쁘게 차려 먹는 것이 좋다. 그렇지만 파스타를 이쁘게 담아 내기가 쉽지 않다. 어렵다. 높이 쌓는게 보기 좋다고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고. 이러나 저러나 모양 내기는 어렵다. 팬에서 면을 건져 접시에 쌓는다. 요리용 젓가락으로 둥굴게 말아도 좋고, 집게로 건져 올려 쌓는 것도 좋다. 그리고 팬에 남아 있는 떨거지들을 면 위에 올린다. 옆으로 퍼지게 하는 것 보다 높이 쌓는게 보기 좋다고. 접시에 튄 소스(올리브 오일)을 닦아 내면 끝.

면수 덕분에 좀 짭짜름해진 파스타가 되었다. 꾸덕꾸덕 씹는 느낌이 살아있는 파스타다. 어때? 괜찮은 파스타가 완성된거야? 하루 아침에 잘 되기는 어렵지. 하다보면 맛이 좀 나긴 하더라고. 그래도 라면 보다 폼나잖아. 초라해 보이지도 않고. 그럼 맛있게 드셈.

대리기사

“저기, 잠깐만요~”

갑작스런 목소리에 놀라 고개를 드니 분홍색 종이가방을 든 남자가 다가오며 말을 건다.

“선일 초등학교가 어디 있는지 아세요?”

선일 초등학교… 익숙한 이름인데 바로 생각나지는 않았다. 남자의 반쯤 벗겨진 이마가 땀으로 번들거린다.

“아.. 가는 길이 복잡한데…”

선일 초등학교는 이 아파트 바로 뒤에 있다. 남자가 서 있는 위치에서 왼쪽으로, 아파트 밖으로 걸어가면 큰 도로가 나온다. 초등학교까지 곧장 이어진 길이어서 쉽게 찾을 수 있지만 돌아 간다는 느낌이다. 오른쪽 길은 아파트 사이로 지나가는 길이다. 가깝지만 출입구 찾기가 어렵다. 어차피 초등학교는 그 자리에 있을 것이고, 어느 쪽이든 거리 차이는 크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길을 선택하는 것은 언제나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남자가 몸을 오른쪽으로 틀었다. 오른손잡이인가, 눈치가 빠른 것인가. 튀어 나가려는 듯 살짝 기울어진 자세다.

“선일 초등학교는 이 아파트 너머에 있어요.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놀이터가 나오구요, 놀이터를 지나면 초등학교에요.”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오른쪽이라는 말을 듣는 동시에 남자는 오른쪽으로 걸음을 시작했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고개가 돌아갔고 휴대폰 액정이 밝게 켜졌다. 급하게 걷는 남자의 팔에 걸린 분홍색 종이가방이 흔들거린다.

 
 
 

이벤트 극장

사무실 문 한테 받은 이벤트 내용은 이렇다.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 남자가 화장실에 간다. 공연이 시작되어도 남자가 돌아오지 않는다. 여자가 불안해 할 때 남자가 피아노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 간다. 남자는 묵묵히 피아노를 연주한다. 연주가 끝나면 무대가 어두워지고 여자에게 보내는 영상 메세지가 나타난다. 메세지가 끝날 때 남자는 여자 곁에 꽃을 들고 서 있다. 그리고 사랑을 고백한다. 퇴장 할 때까지 아름다운 음악이 깔린다. 이런 줄거리.

우리 아트홀이 처음부터 사랑고백의 이벤트로 대관하지는 않았다. 극장을 빌려 사랑고백 이벤트를 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고, 그 일이 잡지에 소개 돼 하나 둘 찾아오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는 정상적인 공연보다 이벤트가 더 많다. 사장도 싫지는 않은지 대놓고 영업을 하진 않지만 이벤트 대관을 막지 않는다. 이벤트를 위해 공연 대관을 미룬 적도 있다. 사장은 클래식 음악 공연장을 가진 음악 애호가로서 명성을 유지하면서 이벤트 대관으로 실속을 챙기는거다. 본연의 업무인 숙박보다 대실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더 좋은 모텔과 비슷하달까.

문은 대관 담당자지만 고백 이벤트의 연출을 즐긴다. 남이 시키는 것만 하다가 시킬 수 있는 기회가 와서 좋단다. 때로는 대관자가 부담스러워하는 것을 넣기도 했는데, 덩치가 짱구 춤을 추기도 했고 불뚝 배를 내민 채 걸그룹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녀가 ‘여자는 이런 것에 약하다’ 라고 말하면 대부분은 설득 당한다.

오랫만의 외출, 클래식 음악회, 근사한 곳에서의 식사… 보통 그런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벤트는 통속적인 스토리에 맞춰 진행된다. 유치해서 오글거리기는 해도 당사자들에겐 효과만점이다. 사전 협의 내용에 따라 여러가지 설정을 선택할 수 있지만 대부분이 무슨 영화에서든 드라마에서 보았던 장면과 비슷하다. 그다지 독창적인 것은 없다. 결혼식에 일정한 패턴이 있듯이 이런 이벤트도 비슷하다. 시작만 조금씩 다르다. 일단 시작하고 나면 한 쪽이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놀라고, 구구절절한 사연을 낭독하고, 울고, 끌어 안고, 또 울면서 끝난다.

사람들은 적절한 타이밍에 조명이 꺼지고 탑 라이트가 들어오는지, 배경음악이 목소리를 방해하지는 않는지, 바닥에 포그가 살짝 깔렸는지 그런 것들을 신경쓰지 않는다. 로맨틱한 분위기에 빠지면 저절로 그렇게 되는 줄 안다. 영화처럼 짜잔~ 나타나는 것은 없다. 모두가 수동으로, 하나씩 대본대로 진행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저절로 일이 일어난 것 처럼 일을 마치야 자연스럽다.

만사가 귀찮은 무대감독은 수당이 느는 것도 아닌데 책임만 늘어 귀찮다고, 조명실 최는 닭살 스러운 행각이 보기 싫다고, 사무실 문은 세상에 자기들 밖에 모르는 사람 시중 드는 것 같아 짜증난다고 말한다.

암전 중에 자리를 이동하던 남자가 넘어져 무대감독이 후래쉬를 켜야 했고, 여자는 애써 못본 척 했다. 어쩌면 이미 감동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남자의 어깨에는 힘이 잔뜩 들어 자연스럽지 않았다. 무대감독은 자기가 남자의 목숨을 구했다고, 남자를 부축하다 까진 무릎을 보이며 낄낄거린다. 조명실 최는 그 남자가 평생 쥐어 살거라며 혀를 끌끌 찬다. 사무실 문이 눈을 흘기면서 이미 극장에 올 때 부터 눈치 챈 것 같았다고 말한다. 화장이 과했는데 떠서 이쁘지는 않았다고. 사무실 문은 여자는 이런거 좋아한다고 말한다. 은근히 이벤트를 바라는 것 같아 조명실 최는 부담스럽다. 세상 모든 이벤트 하는 것들 다 사라졌으면 하고 생각한다. 이 여자에게는 어떤 이벤트가 필요할까. 어지간한 이벤트로는 어림도 없을 것 같아 최는 부담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