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가짜로 만든 진짜를 믿으세요?

소리를 객석에 잘 전달하기 위해선 많은 장비들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정작 추구하는 것은 장비를 쓰지 않은 듯한 소리다.
소리를 객석에 잘 전달하기 위해선 많은 장비들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정작 추구하는 것은 장비를 쓰지 않은 듯한 소리다.

기계적 요소를 제거한 순수한 소리, 과연 있을까?

서울의 소리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한국은 처음 방문 한다는 음향 선생이 물었다. “한국의 OO”라는 명칭이라면 막연하게 하회탈이나 판소리, 아리랑, 부채춤, 사물놀이 그런 것들을 연상하게 된다.

서울의 소리라면 무엇이 있을까… 막연했다. 선생이 꼽은 서울의 소리는 에어컨 실외기 소리, 도로가 하수도 관의 물소리, 자동차와 클랙슨 소리였다. 뭔가 전통적인 것과는 상관없는 현실의 소리인데다 딱히 서울이 아니어도 상관없을 것들이었다. 한국에 도착한 첫 날 호텔 주변을 걸어 다니면서 그가 느낀 서울의 소리는 그런 것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보여 주었다. 호텔 창문을 열고 보이는 서울의 풍경과 그것을 구성하는 소리들을.

선생이 녹음한 실제 서울의 소리는 지루했다. 색다른 변화가 없는 조용한 동네의 소리였으니까. 하지만 녹음된 소리들을 섞어 연출한 서울의 소리는 마치 내가 번잡한 도롯가에 서 있는 것처럼 느끼기에 충분했다.

선생은 또 일반 CD에 들어 있는 음악을 가공해 클럽이 없는 동네였지만 클럽이 있는 듯한 마법을 부렸다. 존재하지 않는 클럽이 생겨났고, 창 밖에 보이는 길 건너 클럽의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달라지는 음악의 느낌을 연출했다. 실제 소리가 아닌 효과음으로 진짜 서울보다 더 서울 같은 소리를 만들어 낸 것이다. 효과음을 통해 여름에도 눈이 내리는 동네를 만들 수 있고, 비 내리는 한적한 오후의 분위기를 연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눈을 감고 소리에 집중하면 내 주변을 둘러싼 것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형광등에서 나는 전자파의 소리, 멀리서 들리는 자동차들의 소리, 옆 방에서 들리는 TV 소리, 그런 것들이다. 예술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주변의 소음에서도 음악적인 것을 발견할 수 있을 수도 있겠다. 음악과 소리가 나눠지는 부분이다.

정치인은 진실을 덮기 위해 거짓을 사용하고,
예술가는 진실을 말하기 위해 거짓을 사용한다 – 영화 <브이 포 벤데타> 중

음향 일을 하다보니 “일체의 기계적인 요소를 제거한 순수 그대로의 소리”를 요구하는 고객을 만나는 경우가 꽤 있다. 연주를 녹음할 때도 그렇고, 공연장에서 확성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기계적인 도움을 받지 않았다, 날것 그대로다~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아마도 ‘일체의 기계적인 요소를 제거한 순수 그대로의 소리’를 요구한 분은 ‘원래보다 예쁘게’ 만드는 작업, ‘실수를 감춰주는’ 작업 등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말했을 것이다. 단점을 단점대로 보이겠다는 의지를 ‘기계를 사용하지 않았다’라는 말과 동일시했던 것이 아닐까. 연주자들은 연주 자체로 승부하고 싶어하지, 많은 장비의 도움을 받아야만 원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연주도 공연장의 환경에 따라, 녹음실의 상태에 따라 원음 그대로 전달할 수는 없는데도 말이다.

소리를 저장하고 전달하기 위해 마이크를 사용하는데, 마이크를 사용하는 이상 원래의 소리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마이크마다 소리에 반응하는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연주를 바로 앞에서 직접 듣지 않는 이상 원음과는 차이가 있고, 바로 앞에서 직접 듣는다 하더라도 직접음이 들리는 거리가 짧아 대중이 함께 하는 공연장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마이크를 쓰지 않고 반사판을 사용하는 경우도 건축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소리를 전달하는 과정에는 어떤 형태든 기계의 개입이 있기 마련이고, 그 개입이 적극적일수록 원음에 가깝게 된다. 원래의 소리에 최대한 가깝게 만드는 것이 고급 기술이고, 그 기술에는 반드시 기계가 사용된다.

‘기계를 사용하지 않는 것’과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의 차이를 인식해야 한다. 현실은 기계를 배제할수록 기계를 사용한 표시가 난다. 반대로, 기계를 사용할수록 기계를 사용한 표시를 없앨 수 있다. 기계 사용의 모순이다. 연주자나 연출자들이 요구하는 ‘기계를 최대한 절제하는’이라는 말은 ‘내 소스가 훌륭해서 기계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훌륭하다’ 라는 뜻으로 해석되길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소스가 좋아서 기계를 덜 썼다~’라는 말이 기계를 덜 썼기 때문에 나의 소스가 훌륭함을 증명하고 있다~라는 표현에 사용될 일은 아니다. 그러니 “원음에 가깝게” 혹은 “원래보다 더 예쁘게”라는 선택이 있을 수는 있어도 ‘기계를 배제하고’라는 선택은 어불성설이다.

진짜보다 가짜가 더 진짜 같고, 기계의 도움 없이 순수하게 자신의 것만으로 가식 없이 보이고 싶을수록 기계의 도움을 많이 받아야 하는 신기한 세상이다.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사용된 가짜의 정교함을 감상하거나, 가짜에 가려진 진실을 찾아 보려는 노력은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가짜 너머에 있는 진짜를 알아 보는 혜안이 필요한 때다.

태그, 꼬리표의 느슨함

컴퓨터가 바꾼 생각 체계를 인간의 방식으로

여행을 다녀 와 사진 파일을 정리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사진 한 장 한 장 마다 사진을 찍을 당시의 이야기가 떠 오르기 때문이다. 주어진 사진을 보고 감상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여행 사진 중에서 내가 나온 사진만 골라내거나 풍경만 골라 내는 경우는 쉽지 않다. 때로는 여기에도 속하고 저기에도 속하는 사진을 어떻게 처리 할지 선택하기 어려운 때도 있다. 이럴 때 태그를 사용하면 고민을 덜 수 있다. 태그는 사진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형태의 방대한 데이터 중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내고, 조합하고, 구성하는데에 사용된다. 태그가 대단히 새로운 기술도 아니다. 가게에서 옷을 살 때 사이즈와 가격이 써있는 꼬리표가 바로 태그다. 옷 가게에서는 “택” 이라고 짧게 부르고 컴퓨터에서는 “태그”라고 풀어서 말하는 차이밖에 없다. 그 상품을 설명하는, 다른 상품과 구분하는 표시가 바로 태그다.

사진을 나누는 방식

함께 여행을 다녀 온 사람들에게 내가 찍은 사진을 보내 주려다 문득 이 많은 사진들이 모두에게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 취향으로 필요하지 않은 사진이야 각자 지우면 그만이지만, 용량이 너무 커서 전송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방법으로 사진을 전달할까, 어떻게 용량을 줄일까 고민하다 중고등학교 때 소풍 사진 생각이 났다.

동네 마다 사진관이 있었다. 소풍을 다녀와 사진을 맡기면 사진관 아저씨는 사람 수 대로 사진을 뽑거나 무조건 1장 뽑는 옵션을 물었다. 사람 수 대로 뽑는 옵션을 선택하면 5명이 찍힌 사진은 5장이 나왔다. 자신이 들어있는 사진을 다 받아 볼 수 있으니 나름 불만이 없는 선택이었지만 정작 사진에 찍힌 당사자가 사진을 원하지 않으면 사진을 뽑아 온 사람은 사진값 처리로 문제가 생겼다.

무조건 1장 옵션으로 일단 샘플을 뽑아 자신의 사진이 필요한 사람의 신청만 받아 다시 출력하기도 했다. 보통 수학여행이나 MT를 다녀와서 너무 많은 사람들의 사진이 겹치기 때문에 사용하는 방법이었지만 한번 출력에 하루 이틀이 걸리는 시절이라 손에 사진을 받아 볼 때까지 며칠 걸린다는게 단점이었다. 필름도 비싸고 사진 인화 가격도 비싸기 때문에 필름 시대의 사진은 그렇게 우리 손에 들어왔다.

그 때와 마찬가지로 상대편이 나온 사진은 이메일로 보내주거나 USB 디스크로 복사해 전달한다. 보통 이런 방식을 사용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면 일이 꼬인다. 가령, 길동이는 풍경 사진 보다 자신이 나온 사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길동이에게 길동이가 나온 사진을 모아서 보내 주려면 할 때 그 사진들만 따로 모아 폴더를 만들고 파일을 복사해 넣고 압축해서 보낸다. 길동이 같은 사람이 10명이면 10개의 폴더에 사진이 쌓인다. 나중에 용량을 줄이려고 보면 같은 사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어느것을 지워야 할지 혼란스럽다.

신혼여행 같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 여행을 다녀와서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보여줄 때 닭살 돋는 개인 사진들은 빼고 여행지의 풍경이나 음식 사진들만 보여주고자 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모든 상황을 대비해 미리 사진을 분류 해 놓을 수도 없는 일이고 딱 한 군데 여행지 뿐만 아니라 지난 몇 년간 다닌 출장지의 음식 사진들을 보고 싶을 때에도 한 번에 목록을 만들어 내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그런 식으로 사진을 구분해 보는 일이 없다면 전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사진이 아니라 자신의 아이디어라면 어떨까. “사진” 이라는 단어 대신 “아이디어” 혹은 “메모”, “약속”, “레시피” 같은 것으로 생각해 보면 생활의 큰 변화가 생긴다. 태그를 사용하는 것은 단지 사진을 정리하는 기능이 아니라 자신의 생활습관을, 행동 패턴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태그는 게으른 정리 방식이다

일기를 꾸준하게 써 온 사람이라도 언제 무슨 일을 했는지 바로 바로 대답 할 수는 없다. 어딘가에 기록되어 있기는 하겠지만 그 내용을 찾기 위해 일기장을 다 뒤져 보기도 힘들고, 뒤져서 찾아 낸다고 하더라도 혹시 또 누락된 내용이 있을 수 있다. 태그를 사용한다는 것, 그리고 컴퓨터를 사용해 기록한다는 것은 지난 날 생각했던 반짝이는 아이디어 혹은 추억들을 다시 끄집어내는데 효과적이다. 지금은 컴퓨터를 사용해 기록한다는 것이 새롭거나 어색하지 않은 시절이므로 현재 상태에서 태그를 사용한다는 것만 추가하면 된다.

태그를 사용한다는 것은 정리를 좀 더 느슨하게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다시 한 번 사진의 예를 들어 보자. 여행 사진이 100장 정도 있을 때 그 사진들을 풍경, 사물, 음식, 인물, 정보(간판이나 티켓등을 찍은 사진)으로 구분하기 위해 폴더를 만들고 따로 구분하여 넣어 놓는다. 인물 폴더에는 각각의 인물별로 폴더를 만들어 분류해 넣는다. 그런 폴더의 구조를 그려보면 마치 회사의 조직도 같은 그림이 된다.

이 분류 방법은 체계적이고 완벽해 보이지만 허술한 구석도 많다. 2명이 찍은 사진은 복사를 해서 각 개인의 이름이 쓰여있는 폴더에 넣어야 하고, 2명이 여행지 간판 앞에서 향토 음식을 들고 찍은 사진이라면 더 많은 복사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폴더를 감상할 때, “아, 이 사진 다음에 뭘 찍었는데..” 할 때 그 다음 사진을 보기가 어렵다. 시간 순서로 배치한 사진들을 보려면 전체 사진을 다시 배치해야하기 때문이다. 마치 회사의 의사결정 처럼 느리고, 융퉁성이 없고, 합리적인 것 처럼 보이지만 합리적이지 않고, 그리고 무엇 보다도 재미가 없다.

태그를 사용하는 방식은 이렇다. 100장의 사진을 한 폴더에 그대로 두고 각 사진에 태그를 단다. 풍경, 사물, 음식, 인물, 정보 같은 태그도 달고 사람 이름 태그도 단다. 사진 한 장에 달 수 있는 태그는 여러 개 일 수 있다. 태그는 파일명이 아니다. 파일명은 폴더 내에서 유일한 것이지만 태그는 같은 태그가 여러 곳에 사용될 수 있다. 사진 한 장에 100개의 태그가 달려도 무방하다. 꼬리표가 덕지덕지 붙은 사진일 수록 다양한 검색에 노출된다. 태그가 붙어 있는 사진은 각각의 태그를 검색할 때마다 태그에 해당하는 사진 목록이 나타날 것이다.

친구와 대화하는 듯한 검색

빙글 빙글 돌다가 2명~ 하면 2명 모이고 5명 하면 5명이 뭉치는 게임처럼 태그를 사용하는 검색도 비슷하다. 풍경 사진 모여~ 하면 풍경 이란 태그가 붙은 사진들만 나타나고 길동이 사진 모여~ 하면 길동이 사진만 나타난다. 책상 위에 100장의 인화된 실제 사진이 널려있는 상황도 비슷하다. 빨간색은 풍경, 파란색은 음식, 노란색은 인물이라는 방식으로 스티커를 붙이 놓으면 스티커 색깔로 사진들을 분류하기가 편하다. 어떤 사진은 빨강, 파랑, 노랑 스티커가 다 붙어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빨간색끼리 모아서 한 폴더에 넣는게 아니라 한 폴더에 빨강 파랑 노랑 스티거 사진을 다 모아 놓고 그 때 그때 빨강만, 파랑만, 노랑만 추려서 보는 방식이 태그 방식이다.

태그는 폴더를 사용해 사진을 물리적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한 폴더 내에 몇가지 구분 표시를 하는 것에 불과하다. 친구가 사진을 가지고 있다면 나는 막연한 말들로 친구의 사진을 찾게 된다. 지난 여름에, 춘천에서, 맛있게 먹었던… 뭐 그런 내용일 것이다. 그런 정도를 말하면 친구가 그게 뭐였지 하면서 그 당시 기억을 되살리며 어떤 사진들을 찾아내고 여러장을 보여준다. 나는 그 중에서 바로 이거야! 하고 한 장을 골라내거나 그 여러장을 모두 보내 달라고 요청한다.

태그를 사용하는 것은 바로 이런 방식과 비슷하다. 작년, 여름, 춘천, 음식, 맛집… 그런 검색어를 가지고 사진을 검색하면 친구가 찾아 주듯 해당 태그를 가지고 있는 사진 몇 장이 나타나고 그 중에 몇 장이 내가 원하는 사진일 것이다. 정확한 이름을 몰라도 사용할 수 있다. 대충 알고있는 몇 가지 혹은 정확하지 않은 몇가지 증거들을 제시하며 근사치를 얻는 방식이다. 그 근사치 목록에서 다시 내가 원하는 것을 골라내는, 실제 생활과 닮은 방식이다.

급하게 생각난 아이디어나, 갑작스레 하게 된 약속, 친구에게 배워 온 요리법 같은 것을 미리 정해진 분류 기준에 맞춰 구분해 넣으려고 하면 아이디어 그 자체보다 분류하는 일이 복잡해 분류작업 자체를 포기하게 된다. 아이디어를 분류하지 않고 태그만 달아 한군데 모아 놓으면 아이디어 자체에 좀 더 집중 할 수 있다. 그것이 태그의 장점이다.

컴퓨터가 나에게 입력을 시키는가, 내가 컴퓨터를 사용하는가

컴퓨터의 역사를 말하는 것은 지루하겠지만, 처음 컴퓨터를 접하던 시절의 컴퓨터는 전문 공학자들이 사용하는 뭔가 전문적인 느낌이었다. 기업에서 사용하는 비싼 장비로, 학교에서 전공하는 사람들이 배우는 장비에서 점점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기계가 되어갔다. 그러면서도 컴퓨터는 그것을 사용하가 위해 사람이 뭔가를 배워야 했다. 학원에 등록해 몇 개월을 공부해야 했고, 자격증을 갖춰야 하는 전문적인 분야에 속했다. 그래서 컴퓨터를 다루는 사람은 뭔가 뿌듯한 자부심이 있었고 컴퓨터는 어려운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많은 것을 저장하고 다시 찾기 위해 컴퓨터를 사용하는데 자료들에게 일일이 이름을 붙여주는 일도 내가 해야하고, 다시 찾기 위해 정확한 이름을 기억하는 것도 나의 몫이었다. 편하지고 컴퓨터를 사용하는데 점점 컴퓨터가 일하기 위해 내가 수고하는 형태가 되어갔고 그것이 당연해졌다. 더 편해지려고 할 수록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수고스러워야 하는 구조에서 불편함을 느끼기 보다 오히려 더 많이 공부하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 하는 상황이랄까. 그래서 내가 원하는 일을 컴퓨터가 하지 못해도 그것을 컴퓨터의 오류라고 생각하기 보다 나의 질문을 수정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이 컴퓨터에 태그를 사용하는 것 하나를 추가하면, 내가 정확한 이름을 지어줄 필요도 없고 정확한 분류 위치에 저장하지 않아도 된다. IMG_3579.JPG 라는 이름을 몰라도 사진을 찾을 수 있고 내가 그 사진이 실제로 어떤 복잡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지 알 필요도 없다. 아이디어를 저장하기 위해 파일 형식은 어때야 하는지, 그 파일은 어떤 구조를 가지고 어떤 체계로 운영될 것인지도 결정할 필요가 없다. 기술적으로는 크게 바뀌는 것도 없는데 태그를 사용하는 것과 아닌것의 차이가 컴퓨터를 사용하는 주체의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주인으로서, 덜 공부하고도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 도구로써의 컴퓨터가 가능하게 된다.

태그를 사용하는 것은 분명 새로운 기술이 아니다. 검색이 가능한 영역에 텍스트 몇 줄을 추가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태그 덕분에 사람이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이라는 이미지가 더욱 분명해진다. 태그가 없을 땐 컴퓨터를 사용하기 위해 내가 맞춰야 했지만 태그가 있을 땐 내가 주인이 되어 컴퓨터가 바쁘게 움직이며 자료를 준비해 주는 것이다. 내가 정확한 이름을 몰라도 미안해 하지 않을 수 있는 것, 컴퓨터를 주인으로서 다루는 그 변화의 시작이 태그다.

:: 월간 개벽신문 15호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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