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 일상의 힘

늘 그렇듯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외출에서 돌아오면 옷을 갈아입고 옷걸이에 걸고 빨래통에 담는다. 책상 위를 정리하고 가방에 들어 있는 짐을 꺼낸다. 세탁기를 돌린다. 아침에 미처 치우지 못한 설거지를 한다. 방바닥을 닦는다. 빨래줄에 널린 빨래를 정리한다. 수건을 접어 넣는다. 티셔츠를 옷걸이에 건다. 양말을 접어 넣는다. 그렇게 집에서의 시간에 적응한다. 일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루틴이다. 나를 지키는 것은 일상이다.

바쁘다고 건너뛰면 또 며칠이 그냥 지나간다. 뭐가 그리 대단한 일을 한다고 방청소도 못한단 말인가. 낚시를 간다거나 등산을 간다거나 공연을 위해 출장을 다녀오는 일이 생기면 이런 일상이 흐트러진다. 책상 위에 빨래가 쌓이고 읽다 중단한 책이 쌓이고 책과 빨래가 겹쳐진다. 의자 위에 수건이 널리기 시작하고 바닥에 버석버석 먼지가 쌓인다.

체육관에서 준비운동으로 몸을 풀고 본격적인 운동을 시작하듯 집안 일에도 준비운동이 필요하다. 이것저것 해야 할 것은 많고 그때그때 떠오르는대로 처리하다 보면 뭘 제대로 한 것도 없이 시간만 흘러있다. 집안 일은 훈련이 필요하다. 쉬워 보일 수록 훈련이 필요해서 군더더기 없는 동작의 흐름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재미 있는 일은 재미 없는 일을 끝낸 후에야 할 수 있다. 그러면 재미 없는 일과 재미 있는 일을 모두 할 수 있다. 재미 있는 일 부터 하면 재미 없는 일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재미 있는 일도 제대로 못하고, 미뤄둔 재미 없는 일은 시작도 못하고 하루가 가 버리는 경우가 많다. 준비운동 같은 재미 없는 일은 꼭 필요한 일이라 빨리 끝내는 것이 좋다.

무슨 거창한 일을 하려고 마음이 심난한지 모르겠다. 반복적이고 고된 일에 몸을 쓰다보면 겸손해 진다. 몸이 힘들면 간사한 마음이 더 편한 것을 찾겠다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한다. 거창한 일이 아니라 당장 할 수 있는 일, 내가 이런 반복적이고 무의미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외치고 싶은 어떤 의미있는 일, 그것이 대단하지 않더라도 지금 하는 무의미한 일 보다는 낫겠다 싶은 어떤 일, 그것을 찾아 나선다. 거드름 피우며 더 위대한 일을 해보겠다고 까불지 않고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선다. 나는 못 이기는 척 마음이 이끄는대로 끌려간다. 그래 당장 할 수 있는 것 부터 하자고.

(원고지 6.4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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