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9. 무책임한 선언

모월 모일에 낭독회를 열겠다.

라고 말했다. 극단 연습실에 단원들을 모아 놓고 내가 쓴 글을 읽어 주는 낭독회를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아직 쓰지도 않았고, 무엇을 쓸지도 계획하지 않은 작품을 발표하겠다고 약속했다. 기세 좋게 말 했지만 선언과 동시에 걱정이 다가온다. 큰일 났다.

연기를 처음 하는 사람, 왕년에 연기 좀 하다가 중단한 사람, 무대에서 몸 쓰는 것을 알고 싶은 사람, 춤과 노래를 잘 하고 싶은 사람들이 힘을 얻고자 모인 워크샵에서 공연을 만들었다. 졸업작품 같은 타이밍이긴 했지만 처음부터 공연이 계획되어 있던 것은 아니다. 클래스를 마치고 나니 연출님이 공연까지 가 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을 했고, 그래서 그럼 하는거지 하고 만든 공연이다. 워크샵 참가자들은 이제 막 걸음마를 마쳤는데 공연이라니, 갑자기 마라톤 경기에 출전하게 된 느낌이었을 거다. 나는 워크샵에 참가자는 아니지만 도움을 주는 역할이라 사람들과 시간을 같이 보냈다.

공연이 올라가긴 하네요, 와 이렇게 공연이 만들어질 수 있군요, 망했다 생각했는데 어떻게 하긴 하네요 그런 말이 오갔다. 급하게 만든 공연이고, 공연이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기간에 만들어진 공연이었다. 그런데 잘 했다. 급하게 만들었는데 오래 공들인 것처럼 작품이 만들어졌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내가 해도 될까? 나는 연기자가 아닌데, 나는 처음인데, 나는 몸치인데. 안 되는 것 많고 할 수 없는 것도 많았다. 못하는 이유도 천차만별이고 하면 안 되는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그런데도 밀어붙이고 끌어당기고 뛰어들게 만든다. 그리고 사람들이 해낸다.

저지르면 어떻게든 하게 된다, 마감이 결과를 만든다, 뛰어 내리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안전한 방법으로는 제자리를 맴돌 뿐이다, 잘 하는 건 어려워도 그냥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온 말이다. 하면 된다고, 일단 시작하라고, 마감을 가지라고, 끝을 보라고, 결과를 만들라고 사람들에게 응원의 말을 하다가 그럼 너도 해보라는 말에 아 그럼 나도 하지라고 대답을 하다가 낭독회까지 왔다.

그래 이건 명작을 쓰는 게 아니라 뭐라도 쓴 걸 발표하는 자리다. 사람들 시간을 헛되게 할 수 없으니 정성이 느껴지게는 해야지. 노력한 결과를 보여주는 거지 꼭 감동을 주는 명작을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니다. 내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리지 잘 팔리는 책을 한권 만들어 발표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러니 맘 편하게, 친구들에게 내가 최근에 이런 일을 했다라고 근황을 알리는 자리니 부담을 갖지 말라고.

그렇게 남의 말 하듯 나에게 말한다.

(원고지 7.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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