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3. 글쓰기 습관

나는 마감의 압박이 일을 끝내는데 도움이 되는 편이다. 미리 준비하고 계획한 일정대로 끝내는 경우가 잘 없다. 늘 대충 준비하고 막판에 부랴부랴 처리하고, 조금만 더 시간이 있으면 좋았을 걸 하며 아쉬워한다. 그리고는 다음에도 또 똑같다. 지금까지 크게 벗어나지 않는 패턴이다.

마음속으로 어떤 단어나 하고 싶은 말이 생각나면 그 단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술자리에서도 마찬가지인데, 평소 하기 어려웠던 말이 속에서 한번 울컥 생각이 들면 그날 밤 술자리에서 꼭 하게 된다. 상대방이 곤란할까 봐 꺼내기 어려웠던 말이기도 하고, 그런 말을 한다고 도움이 될까 싶기도 하고, 내 까짓 게 뭐라고 그런 말을 하나 싶기도 하고, 내가 말한다고 듣기나 할까 싶기도 해서 하지 못했던 말. 술의 힘을 빌려서 나오기도 하고 술 마시다 조금은 풀린 마음으로 편하게 말하기도 하고. 속에 꽁하게 감추어 두었던 말이 마감 시간에 쫓겨 나오는 날이 있다. 다음 날 기억을 더듬어 보면 후회하게 되고 또 내 맘에 들지도 않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아야지 정도 생각하게 된다.

마음 깊숙이 감추어 두었던 말이 쑥 떠오르길 바라거나, 마감에 쫓겨 급한 대로 아무 소재나 덜컥 갖다 쓰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담담하게 있는 그대로를 객관적으로 말하고 싶다. 가식적이고 기계적인 중립이 아니라 관찰과 이해에서 오는 거리감을 유지하고 싶다. 그런데 이렇게 하고 싶은 게 많고 하기 싫은 게 많은 날을 되돌아보면, 바로 그날이 감정에 휘둘렸던 날이었던 것 같다.

(원고지 4.2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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