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9. 명사로 살기와 동사로 살기

나는 명사로 살았다. 동사 명사 형용사 부사 할 때 명사.

나는 내게 주어진 역할에 대해 명칭이 분명할수록 일하기가 편했다.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해야 할 상황일 때는 내가 누군지 소개가 되고 나서야 겁이 나지 않았다. 내가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스스로 소개하는 말은 하지 못했다.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 자체가 불편하기도 하지만,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곳에 내던져져 내가 누군지 알리고 상대방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과정 자체를 피곤하게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누가 위고 아래인지 따지는 서열 문제도 한 몫 했을 것이다.

회사 시스템은 명사로 사는 삶이다. 상대와 나의 관계는 직책으로 구분되고, 업무분장이 있어서 나에게 주어진 일이 무엇인지 비교적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명함에 쓰인 것이 나의 위치고 나의 업무다. 제대로 된 회사일수록 업무분장이 분명하니 업무분장이 곧 명사의 삶이라 할 수 있다. 명사로 산다는 것은, 내가 살고 싶은 명사로 불리기 위해 자격을 획득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해진다. 자격을 획득하더라도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자격증 자체가 없는 분야에서는 내가 이런 일을 해도 되나? 하는 걱정도 한다. 나 보다 못한 자격을 가진 사람 앞에서 우쭐해지기도 하고, 나 보다 나은 사람 앞에서 작아지기도 한다.

어려운 일도 내가 누군지 소개가 되고, 내가 그런 일을 해도 되는 사람이라고 알려지고 나면 나는 그 역할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었다. 평소 내가 하지 않는 모습이라도 주어진 역할이니까 일을 해낼 수 있었다. 나에게 알바생이라는 역할이 주어졌기 때문에 하기 싫은 계단 청소를 하고, 서빙을 하고, 적당한 모욕도 참고 견딜 수 있었다.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에게 큰소리도 칠 수 있고, 화장실 쓰레기도 비울 수 있다. 알바생 역할이 아니라면 생각지도 않을 일이다.

회사의 일이 명사로 사는 삶이기 때문에 명함이 사라지는 날 나에게 주어진 일도 함께 사라진다. 알바 자리를 그만두면 알바생이 아니게 되고 알바생이 아니기 때문에 하기 싫은 청소는 하지 않아도 된다. 부장님 직함이 사라지면 사활을 결정하던 역할에서 그냥 동네 아저씨가 된다. 부장일 때 나오던 위풍당당 목소리는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동사의 삶은 생각이나 행동을 명사로 정의하지 않고도 실천하는 삶이다. 기타를 치고 싶어서 기타리스트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기타를 치는 것이다. ‘기타리스트’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기타를 친다’는 것에 집중한다. 작가가 되려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쓰고 싶어서 쓰는 것이 동사의 삶이다.

동사로 사는 것이 계획성도 없고 산만하고 아무렇게나 사는 것처럼 생각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명사의 삶을 살아가도록 학습되는 것 같다. 더 나은 조건의 자격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한다. 끊임없이 노력하다 보니 내가 가진 자격의 자유를 사용할 줄 모른다. 어리니까, 학생이니까, 젊으니까 해도 괜찮은 일들이나 여유를 누리지 않는다. 그러면 더 나은 자격을 획득하는 데 방해가 되니까. 혹은 방해가 될까봐.

명사의 삶과 동사의 삶 중에서 어느 것이 옳고 틀리다 하는 것은 아니다. 명사의 삶은 나에게 안정을 주고 동사의 삶은 나의 자유를 사용하는 삶이다. 명사의 삶으로 자유를 저축하고, 동사의 삶으로 자유를 꺼내 쓴다. 명사의 삶에서 동사로 사는 것은, 무엇이 되려고 애쓰지 않고 무엇 그 자체로 사는 것이다. 이걸 뭐하러 하고 있나, 뭐가 되려고 이 짓을 하고 있나, 내가 이걸 왜하나 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좋으면 해 보는 거, 하고 싶으면 하는 거, 남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다면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게 좋지 않을까. 뭐가 되려는지 생각하지 말고.

(원고지 10.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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